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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건반 연습으로 #교대입학 #피아노 #음악시험을 합격한 #윤선생님

봉암언덕 2021. 1. 8. 16:30

FB Essay 136.
종이 건반 연습으로 #교대입학 #피아노 #음악시험을 합격한 #윤선생님

윤선생님은 부산에서 오래도록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셨습니다. 부산 출신인 아내에게서 그분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터 윤선생님이 저와 폐친이 되셨고 자주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댓글 중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스런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제 삶은 뜻밖에 하늘에서 내려온 따뜻한 기적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자 진학을 원하는 대학별로 아이들은 공부하는 반이 나뉘었습니다. 서울대, 연고대, 이화여대, 부산대 그리고 나머지 세 반은 교대반이었습니다. 난 선택의 여지없이 교대반이었고, 곧이어 실기시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땐 초등학교 교사는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다재 다능 만능인을 요구하는 터라서 실기 능력도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체육시험은 육단 뜀틀 넘기, 음악 시험은 피아노 치기, 미술 시험은 인물좌상을 수채화로 나타내기였습니다. 뜀틀은 짜ㆍ장ㆍ면 하는 체육선생님의 호령에 맞춰서 도움닫기 구름판의 위치를 잡아 구르기, 뜀틀 위 두 손 짚는 위치 잡고, 그 다음은 멋진 공중을 날아서 두 팔 앞으로 균형잡고, 무릎 살짝 구부렸다 펴서 서는 안전한 착지 자세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시험 준비는 두려움을 없애니 쉽게 되었습니다. 미술은 여고 시절 평소에도 죠셉스미스 등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취미가 있었으므로 인물화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피아노 실기였습니다.

당시 다른 애들은 학원이나 개인 교습을 받았고, 이미 바이엘을 떼고 소나티네와 손가락 연습으로 체르니를 함께 쳤습니다. 그러나 그리 못하는 난 어려운 가정 형편에 맞게 학교 기악실로 갔습니다. 거기엔 고장난 올겐이 여러 대 있었고, 발판을 밟으면 자동으로 여러 개 내려 앉은 건반들로 인하여 나는 불협화음이 나오는 올겐들 뿐이었습니다. 내려앉은 여러 개의 건반을 고치려 뚜껑을 뜯어 보기도 하였으나 이내 포기를 하고 바이엘 책 뒤쪽에 접혀서 달려있는 기다란 종이 건반을 뜯어내 펼쳐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오른손과 왼손 연습은 벌 거 아니었고, 두 손 연습 땐 오른손 엄지칠 땐 왼손 엄지도 같이 따라다니려 해서 조금 헤깔렸지만 이내 극복했습니다.

학교에서 첫 피아노 기능 확인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제시한 건 바이엘 16번이었습니다. 단조롭긴 해도 연습곡 치곤 음악성이 느껴지는 잔잔하고 예쁜 멜로디였습니다. 학원 등을 다니는 애들은 익숙한 손가락으로 재빠르게 쳐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습니다. 처음으로 실제 건반에 손가락을 대보는 나는 고장난 올겐과는 다르게 손가락이 쑥 내려가는 바람에 다음으로 연결을 못한 채로 깜짝 놀래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친절하신 선생님은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도미레파 미도레에~~ 차근 차근 누르는데 이마에선 식은 땀이 났습니다. 짧은 곡이라 다행히 끝마칠 수가 있었는데 조마조마하던 저는 선생님의 뜻밖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영자는 리듬감을 잘 살려 강약 조절도 되서 아주 잘 쳤다. 손가락 힘만 좀 더 고르게 하면 좋겠다.”
날아갈듯 기쁜 건 이런거 였습니다. 사실 종이 건반에서 연습할 때는 손가락이 밑으로 내려간다는 건 생각지 못했었고, 실제 건반에서는 특히 왼손 네번째 약지는 왜 그리 힘이 없었는지요. 다른 손가락이 내려갈 때 마다 같이 살짝 내려가서는 띵 해야 할 소리를 띠딩하고, 악보에 없는 꾸밈음을 살그머니 내어주곤 했던 것입니다.

아직 침례 전이었으나 중학 때 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하늘 높이 계신 분께 기도를 했고 우연히 야구왕 탁이를 보면서 탁이가 남몰래 모래주머니를 팔다리에 차고 땀흘리며 걷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힌트였습니다! 나는 새까만 고무줄로 네 번째 손가락 손톱 위 마디를 뽈끈 잡아매고 한 끝은 입에 당겨지도록 물고, 그 손가락이 함부로 같이 내려가지 않게 하고 내려갈 차례에선 고무줄을 더 꼭 물고 내려갈 때 마다 힘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두번째 실기 확인 때는 무사 통과! 그런데 절로 나오던 미소도 기쁨도 잠시였고, 갑자기 오선에 #표식이 한 개 두 개 나오기 시작했고, 난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어쩌나? 다장조에 익숙한 손가락이 헤메기를 계속했고, 검은 건반은 왜 그리 어색한지. 대책없는 가운데 인정없는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갔습니다. 12월이 되고 대학 시험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당시 교대는 한 과목이라도 낙제가 되면 불합격이었기 땜에 막막한 좌절감이 나를 온통 휩싸고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한줄기 가늘지만 환한 빛이 선물로 내려 왔습니다.

교대 음악 실기 시험안내가 발표되었는데 세상에 연주곡은 “바이엘 66번!!”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는 노래같은 곡이어서 평소에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애창곡이 됐던, 마치 피아니스트나 된 것 처럼 고개짓하며, 입으로 소리내면서 종이건반을 외우다 싶이 익숙하게 치던 #없는 곡이었습니다. 종이로 연습하던 나를 격려해 주던 친구들과 함께 소리지르면서 팔짝빨짝 뛰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뜻밖에 높게만 계신 하늘에서 내 기도를 들으셨나보다. 시험을 앞두고 누군가 함께해주는 것 같은 듬직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평안을 느끼며 자신감과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험장에서 먼저 피아노를 익숙하게 연주하듯이 쳐낼 수 있었고, 강당으로 가서 짜! 장! 면! 3단계를 뇌이면서 힘차게 구름판을 굴렀는데, 처음해보는 스프링이 달린 구름판이었고, 나는 정말 높이 올라 멀리 날았고, 예쁘게 착지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대학 입학식 날 미술부 반장이 다가와서 나더러 미술부에 들라고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나를 대학으로 안내한 첫 번 기도의 응답은 커다란 기적이었고, 평생 동안 내게 여러 경험과 선교의 기회와 발전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빠의 적은 수입만으론 힘들어 엄마랑 나랑 언니들이 밤새토록 그물짜기로 부수입을 만들던 때, 어린조카들이랑 열두세명이 작은 셋집에 모여살아야만 했던 때 나는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피난민 가족으로 한 뼘의 땅도 없던 채로 우리를 키우고 교육시키느라 빚도 많은 상태에 내 수입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었고, 엄마께 봉투째 드려야했는데 원불교를 열심히 다니시는 엄마에게 첫 월급봉투를 드리면서 한가지 간곡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발령받고 다음 날 침례를 받은 나는 물론 기도를 먼저 하고 처음으로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아주 자신없는 소리로 부탁을 드렸습니다.
“엄마!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이라서 제게 주시면 좋겠어요.”
모기같은 목소리의 나의 간청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상냥하고 부드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순아. 하나님 것이라면 하나님께 꼭꼭 드리도록 하거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피난민 시절의 어려운 시절에 먹고 살기도 어려운 대가족들 앞에 두고 십일조라니요.
윤선생님은 그 후로도 평생 헌신하고 봉사하고 지금까지 그리해 오셨습니다.
수심명의 학생들을 복음의 물가로 인도하기도 하셨구요.
오늘도 이 글을 읽으실 선생님의 모범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후학들이 어찌 살아야 하는지 사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1.8.

빛고을 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