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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온도 19. 탈북한 여자분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인사
봉암언덕
2021. 12. 26. 01:56
FB Essay 321.탈북한 여자분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인사
존경하는 박사님
가족이랑 행복이 가득한 연말 보내고 내년에는 더욱더 좋은 일이 박사님에게 비처럼 내리길 바래요.
축복과 건강이 박사님이랑 늘 함께 하시길바랍니다
존경합니다. 박사님^^^ 메리크리스마스^^^^^^^^
몇 해 전에 서울에 있는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아 나주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의 말을 잘들어보고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좀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에서 오신 분은 처음인지라 무척이나 궁금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까페에서 만난 그녀는 무척이나 왜소하고 마른 체격이었다. 가슴 아픈 것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한쪽 어께가 많이 굽어보였다. 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몇 개국, 한국으로 거쳐오면서 어디선가 심한 노동의 흔적처럼 보였다. 지나온 영화같은 탈출의 이야길 들려주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 이야길 많이 하였다. 구멍이 숭숭보이는 흙벽의 집에서 사셨는데 자신이 한국에서 돈을 보내어 이제는 비가 새지 않는 집다운 집에 살고 계시다고 하면서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돈을 보내고 나면 남는 돈이 적으니 여기서 열심히 일해야한다고 하였다.
나주 혁신도시의 한전에서 인턴으로 몇 개월 일하고 있는데 곧 어디론가 일자리를 찾아 떠나가야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고 하였고, 자신이 겪은 일을 담은 백여페이지의 글을 보여주었다. 글쓰는 실력이 보통이 넘었다. 상도 받았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날씬하고, 얼굴도 곱고, 성품도 상냥하여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을 그녀가 많이 상해보였다.
그녀가 글을 쓴다는 것이 반가워서 저도 소설과 에세이를 씁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아휴 박사님 글쓰는 사람들은 가난한데요. 박사님도 그러시죠? 그랬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 후 그녀는 가끔 안부를 몇 마디 문자로 보내왔다. 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하였다. 내가 자신을 위해 해준 것이 별로 없는데 늘 그리 표현하여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 광주에 있을 때 무엇인가 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잘지내고 계신가요? 비록 힘들어도 잘 참으시고 한 발 한 발 꾸준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곧이어 답이 왔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우린 살아간다. 아무런 걱정이 없이 편안한 삶을 살던, 무엇인가 걱정거리를 돌덩이처럼 안고 힘겹게 걸어가던지 우린 누구나 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어느 종교지도자는 그리 말했다. 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력된 경험은 물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산이라는 인문학연구자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이런 때 일수록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해야할 것이다. 희망의 빛줄기를 열고 지탱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 첫째는 말을 바꾸는 것이다. 체념과 불평의 말을 버리고 긍정과 상호 응원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다. 어떤 말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물도 되고 독도 될 것이다.
탈북한 그녀는 다행히 늘 씩씩하다. 북한의 보복이 두려운 것인지 자주 전화를 바꾸고, 주소도 자주 바꾸고, 이름도 때로는 바꾼다고 한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굿굿하다. 연말 연시에 가까운 곳에 산다면 집으로 초대하여 따스한 된장찌개라도 함께하련만 지금은 서울에서 어찌 지내는지 모르겠다.
그녀에게 한반도의 남쪽 전라도에서 인사를 전한다.
아름다운 성탄절 저녁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