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감동온도 28. 103세 그의 #건강 #비결 9가지

FB Essay 340.
103세 그의 건강 비결 9가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형석교수 이야기다. 나는 어느 모임에서 그의 강의를 듣고, 그와 차를 마시면서 가까이서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그때도 건강하였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다. 103세인 지금도 강의 및 저술 활동이 활발하다. 그는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까?
1. 이른 아침의 규칙적인 식사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양복바지와 넥타이를 맨 그가 어김없이 식탁에 나타난다. 그리고 가정도우미 아주머니가 준비한 식사를 한다. 색색 채소, 우유, 달걀, 찐감자 반쪽, 당근, 버섯처럼 생긴 녹색 야채 한송이등이다. 몇십년간 똑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한다. 내가 아는 프랑스 바이어는 아침이면 항상 요구르트 한컵을 먹는데 늘 건강하다. 일정한 아침 식습관이 건강에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식사시간은 무려 1시간이다. 풀밖에 없는 식사를 그리고 조용히 아주 느리게 먹는다.
2. 식사 후 동내 뒷산을 오른다.
20년간 매일 오른다. 다리에 힘을 잃지않기 위해서 매일 숲길을 걷는다. 걷다보면 다리 힘도 생기고 생각하는 힘도 생긴다고 한다. 12월에 숲길을 걸으면서 올해 1년 동안 일을 얼마나 했을까? 한 해 빈 그릇에 무엇을 얼마나 채웠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내년에는 가득 채워야할텐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2021년에는 그릇을 더많이 채우리라는 결심도 한다고 한다.
3. 낮잠을 잔다
오후에 홀로 살고 있는 그의 집에 고요가 찾아든다. 낮잠을 자는 것이다. 매일 산책을 한 후에 오후에는 짦은 낮잠을 잔다. “교수님은 낮잠을 1-2시간 자거나 그러지 않고 10분, 15분, 20분 잠깐 잠깐 규칙적으로, 항상 규칙적으로 조금씩 주무세요. 그래서 건강하신 것 같아요.” 가정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이다.
4. 가족
보약같은 낮잠을 잔 후에 동네 골목을 10분 걸어서 큰아들 집으로 간다. 40년대 일본 유학시절 아내를 만나 2남 4녀를 두었는데, 70세 이상이 셋이나 된다. 그날은 코로나로 보지 못한 둘째 딸이 미국에서 와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외손녀가 결혼했는데 그녀의 미국 신랑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김형석은 그들이 한국에 오면 여기서 사용할 여비는 자신이 주겠다고 하였다. 103세에 제정적인 여유가 있는 멋쟁이 할아버지다. 김형석은 가족이 가까이 살고 있으니 쉽게 만나고 편하고 좋다고 한다. 김형석의 70대의 아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강연을 많이 다닐 때 자신을 자주 데리고 다녔다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전공도 철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강의를 통해서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감화력은 그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자신도 그 덕을 보았다고 한다. 그의 건강에 가족과의 강한 유대도 한몫을 하는 셈이다.
5. 독서를 한다
어둔 밤. 저녁시간. 김형석은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이 시간에 늘 책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의 책도 읽고, 자신이 집필한 책을 읽기도 한다. 그는 50여권을 집필하였다. 저술에 대한 열정은 짐금도 여전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살아있는 한국의 현대 역사증인인 그는 책을 통해서 올바른 철학의 대중화와 후학 양성을 위해 깊은 통찰력과 가르침을 전한.
6. 일기를 쓴다
하루 마무리 마지막 일과는 일기쓰기이다. 재작년의 일기를 보면서. 그해의 일을 정리하고, 작년의 오늘을 읽으면서 그 이후의 변화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오늘의 일기로 연장해본다. 그리고 일기는 오늘 내가 한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에 내가 일을 할때는 무엇을 해야할지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 다움으로 충만한 하루의 행복의 조각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97세를 넘어 지금까지 자신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나 하고 스스로 감탄하면서 다른 사람들 보다 한 인생을 더 가진 것 같은 느낌을 갖곤한다.
7. 친구와의 우정
그는 가끔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 강원도 양구 간다. 그곳에 기념관인 ‘김형석 안병욱교수의 철학의 집’이 있다. 10년 전에 양구사람들이 그와 안병욱교수의 교향이 북한이라 93세때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니 가까운 휴전서 아래에 우리가 기념관으로 모시고 싶다고 하여 생긴 것이다. 두 사람의 기념관인 이곳을 가득채운 것은 오래전에 사용한 안경, 저서 초판, 서재 가구 집기 , 그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포함된 사유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그곳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안병욱 교수의 묘소도 있다.
평생의 친구였다가 고인이된 벗이 그리울 때 이곳을 자주 찾는다. 묘앞에서 묵념의 예를 갖춘다. 김형석 교수가 사망하면 그의 옆에 묻힐 것이다. 그는 친구와 평생 행복하게 잘 지냈다고 하였다. 친구들과의 우정 역시 그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
8. 자연속 집필 작업
을왕리 어느 까페에 그의 제2의 서재가 있다. 1주일에 2-3번 정도는 이곳에서 원고를 쓴다. 서울에서만 살면 답답하기 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자리잡은 이곳은 그의 새로운 창의력의 집필실이다. 그는 하루에 30장 정도의 원고를 쓴다. 항상 원고지 위에 만년필의 육필원고이다. 원고지 위에 만년필로 육필원고로 고뇌와 통찰의 글을 써내려간다. 제자들도 가끔 노스승을 만나기위해서 이곳으로 온다. 스승은 제자 박순영 교수에게 작금의 코로나 전염병은 인도, 아프리카,중국, 선진국등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조언한다. 공동체의식, 책임의식, 나눔의식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한다. 인간답게 행복하게 가는 길은 진실, 정직, 자유임을 그리고 인간 목적원을 강조하다보면 을왕리의 해가 저물곤 한다. 그는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심신이 가장 건강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작업을 한다.
9.건강한 철학
그는 “사람은 태어날 때는 모두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끝날 때는 다르다. 석양의 해질녘의 웅장한 분위기가 해가 뜰 때의 단순함보다 좋다.”고 하였다. 우리도 웅장하게 생을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는 말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진정한 행복이었다. 국민, 학생, 가족, 그들의 삶을 위해 사랑의 고생을 한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어려움과 고통을 빼버리면 열매없는 나무이고 잎사귀만 남은 나무이다.”
그의 내면의 건강한 철학, 규칙적인 생활(일어남, 산책, 가족, 일기, 친구, 자연속 사색등)이 그를 103세까지 건강하게 끌고 가는 동력으로 보인다.
202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