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명 자녀들에게 외면당한 늙은 아버지, 마지막 아들을 찾아 소록도로 가는데
어제 외출하고 돌어오니 봉선동에 사시는 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계셨다. 검정 모자, 검정 털잠바, 검정 면바지 차림의 8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푹 묻혀 계셨다. 수많은 세월을 지낸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내가 학생 때 아버지는 술 때문에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한 날은 고1의 난 아버지의 억센 몸을 안고 마당으로 굴렀다. 그만 하라고 울부짖으면서. 그런 삶을 살아서일까 아버지는 가끔 “네 엄마가 죽으면 난 찬밥 신세일텐데..” 하면서 중얼기리곤 한다.
오늘 인터넷에서 한 이야길 읽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고향 고흥군 봉암은 소록도를 물건너로 마주 보고 있다. 소록도에 얽힌 이야기
이기도 하다. 지금 일흔인 아버지는 열 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중 한 아이가 나병에 걸렸다. 40년 전 그 아이 11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소록도에 나환자촌
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어느 늦여름, 서울근교에서 소록도까지는 머나먼 길이었다. 하루종일 걸어 지친 몸으로 어느 산기슭
에서 잠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가여운 아들을 차라리 일찍 죽게 하기 위하여 돌덩이를 들어 내리쳤으나 돌은 아들을 빗겨갔다. 더는 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깨워 소록도로 길을 재촉했다.
머나먼 길을 걸어 마침내 소록도로 가는 배가 있는 선착장에 도달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나병 환자들을 난생처음 직접 보게 되었다. 그들이 배를 타려고 몰려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저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우리 둘이 죽자. 그러고는 인적이 드문 근처 바닷가로 가서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물이 아버지의 목으로 차오를 때 이미 머리가 잠길 지경이 된 아들이 아버지를 물가로 밀어내면서 문둥이는 자기니까 아버지는 살아서 형과 누나들을 돌보라고 울면서 허우적거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힘껏 안아주면서 물가로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결국 아들은 소록도로 보내졌다. 그후 정성껏 돌보아진 아버지의 아홉 명의 아이들은 잘 자라서 대학도 나오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들이 아버지 시골의 땅을 모두 팔고 서울로 오셔서 같이 살죠? 라고 하였고 아버지는 그리 하였다. 처음 얼마간은 해주는 밥 먹고 깔아주는 이부자리에서 자고 행복하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아들 내외의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들이 큰 아들만 아들이냐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길로 그 집을 나와 둘째, 셋째 식으로 아이들집을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버지는 시골집으로 다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40년전에 소록도에 버리고 온 아들이 생각났다.
아홉명의 자식들은 온갖 정성으로 대학까지 마치도록 키웠지만 40년간 단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아들,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아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찾아 소록도로 가게 되었다. 무려 40년 만에. 그곳에서 만난 아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나이는 쉰이 넘었지만 갖은 병고로 아버지보다 더 늙어 보였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아이적의 투명하고 맑은 그대로였다. 아들은 다행스럽게도 중간에 완치되어 음성 나환자촌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진 채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를 껴안은 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아버지는 소록도의 아들 가족들을 보면서 이제까지 다른 아이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진실한 사랑을 느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함께 살아주시라고 간청을 하였다.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나는 이 아들에게 잃어버린 지난 40년을 보상해주어야 한다.”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남은 여생을 소록도에서 함께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고향 고흥 녹동 앞바다에서 눈앞에 보이는 소록도, 연륙교를 타고 자동차로 건너가면 마을 어느 구석에 이 놀라운 가족들이 지금도 살고 있을까? 어느 명절에 고향에 성묘가는 길에 들르면 그들을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을 보면서 광주 봉선동에 살고 계시는 나의 아버지와의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뿌옇게 흐린 우리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